'연말만 되면 쓸데없이 보도블럭을 뜯어 재낀다', '멀쩡한 도로 땜질한다며 도로를 누더기로 만든다' 등등 꽤 많은 시민들이 불만을 터트리죠. 예산을 신청하는 부서의 공무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음해의 예산은 그 해에 소비된 예산에 준해서 책정이 되기 때문에 남은 예산을 소모하지 않으면 다음해에 그 분야의 예산이 소모하지 않은 정도에 비례해서 깍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무작정 욕을 하기 전에 내가 예산안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다음해 예산을 책정할까를 생각해봤습니다. 작년과 동일한 사업이 올라왔을 때, 저라도 올해에 그 분야에 집행된 예산의 양과 소모되지 않고 남은 예산을 먼저 살펴볼 것 같습니다. 물론 단순히 숫자놀음만 하고 싶지 않으니 그 사업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그 전 약 3년 내지 5년간의 사업 시행내역도 살펴볼 것 같습니다. 또 실제 공사시행구간 단위 사업비용이나, 시행구간들도 비교해볼 것 같습니다.
말은 쉽지만 이렇게 할려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문제는 공무원들에게 물리적으로 그렇게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아마도 그 업무를 맡은 공무원은 보도블럭 하나만 담당하지는 않을테고 이외에도 수백 혹은 수천가지 분야의 예산을 다뤄야 할텐데 그 모든 분야를 이렇게 일일이 살펴볼 수는 없을 겁니다.
주민참여예산은 주민에게 필요한 것을 주민이 직접 요구하고 그것에 들어갈 비용이나 필요도 사업 타당성등을 전문성은 부족하지만 사업계획안을 만들어 요청하는 것입니다. 공무원은 사업의 발굴, 조사, 계획등을 주민들의 제안으로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또 시행까지도 일정 부분 주민의 참여로 더 쉽게 할 수 있는 거죠. 꼭 필요한 곳에 예산을 집행할 가능성이 높아지니 시민의 만족도도 높아질 수 있고 자연스레 그 지자체의 평가는 좋아질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낸 세금이 제대로 씌여지는데도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습니다.
작년에 통과된 주민참여예산 사업의 실제 집행을 위해 이야기를 나눠보다가 왜 이런 주민참여예산 사업에 공무원들이 소극적이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공무 회계의 기준을 모르는 주민들은 나름 이런식으로 예산을 만듭니다. 주민들 중에는 회사를 다니며 회계등을 해보신 분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전문적인 분이 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래도 지금 보시는 이 사업예산은 깔끔하게 만들어진 편입니다.
하지만 실제 사업 집행하기 위해서는 당장 초청강사 부분에서부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공무 회계 기준에서는 초청강사에게 지급할 수 있는 강연 비용이 초청 강사의 등급에 따라 줄 수 있는 최대 금액이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 강사의 등급은 그 강사의 자격증과 학위 수준등으로 등급이 따로 되어 있더군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강연을 하면 최소한 물이나 차 혹은 간단한 다과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간식비용을 집어넣었습니다. 하지만 공무회계 기준에 따르면 간식이라는 항목으로는 예산을 지출할 수가 없었습니다. 잡비라든가 그 외에 다양한 항목이 존재하지만 주민참여예산을 신청할 때 그런 항목을 넣지 않았으니 그 쪽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민참여예산도 일반 예산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주민예산안에 없는 항목을 다시 만들수는 없는데, 공무원들이 예산안에 없는 항목을 만들어서 집행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민자치회의 구성부터 총회까지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가에 대한 초급, 중급 강의를 모두 들었지만 바로 저 예산 분야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알지 못했고, 올 해 사업안을 실제 집행하기 위해 시에서 내려온 예산을 놓고 담당 주무관과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된 사실입니다. 사무국장이 아니었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도 않을을텐데... 그래도 이왕 시작한 것 좀 제대로 알아서 기록으로 남겨 다음 사람에게 넘겨줘야 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대학 때 20년이 넘은 역사를 가졌던 저의 학회도 그랬고, 사회에 나와서 마주쳤던 많은 곳들이 그랬는데, 이곳 주민자치회도 기존의 업무에 대한 과정들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물론 컴퓨터 화면에 두서없이 올려진 50여개의 폴더와 그 안에 들어있는 사진과 문서들이 있습니다. 똑같은 자료가 여러개의 폴더에 있는 경우도 있고, 같은 내용을 여러가지 버젼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있고 해서 그것을 정리해볼까 생각도 했습니다만 공무문서는 이미 존재하는 형식이 있으므로 따로 만들지 않아도 사업을 할때마다 축적할 수 있고,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문서들은 작성한 본인도 제대로 정리를 못할 정도니 그냥 다시 만드는 것이 낫겠다 싶어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할 때 겪게된 다양하고 사소한 하지만 그 사소한 것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거나 시간이 많은 걸리게 되는 것들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날로 새로워지는 것은 나의 의지와 노력이어야지, 매 번 하는 일이 새로워서는 안되겠죠. 주민자치회를 하시는 분들에게 꼭 정리해서 자료를 남겨 후임에게 물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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