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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회 이야기

2. 도심 텃밭 이야기(1)

by Warrny 2022. 3. 27.

플라스틱 재활용 챌린지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다음 주에 그 실제 적용 계획을 정하기로 했거든요. 그전에 살짝 말씀을 드리자면 동마다 새워지고 있는 작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첫번째 분기 사업을 시작할 겁니다. 좀 더 확실히 정해지면 그것과 함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비전2동 주민자치회에서 주력으로 하는 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요가, 장구, 수어 등 주민들의 문화적인 욕구와 배움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주민참여프로그램, 제가 이야기하려던 플라스틱재활용 챌린지처럼 주민참여예산 사업, 그리고 오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주민참여 텃밭입니다.

비전2동 2월 월례회의 안건 중- 매월 열리는 월례회의의 안건 만들기 부터 결정과 실행까지 모든 주민이 합니다.

주민자치회는 직접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서 그에 대한 예산부터 집행까지를 주민자치위원을 중심으로 주민들과 함께 꾸려나가는 것입니다. 그중 비전2동의 가장 큰 사업이 바로 이 텃밭입니다. 원래 이곳은 새롭게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복지에 대한 충분한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복지센터 건립을 위해 평택도시공사가 꽤 넓은 용지를 확보해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땅만 있다고 주변 수천세대를 만족시킬 만한 건물과 그 운용을 위한 예산까지 한번에 확보는 불가능 했었던 것 같습니다. 공원을 조성했지만 공지가 있다보니 자꾸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사람도 늘어났고 주변 아파트 단지의 환경을 헤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새롭게 전환된 전임 주민차지회가 도시공사가 모든 준비가 되어 복지센터를 건설하기 전까지 주변 주민들을 위해 텃밭을 꾸미겠다고 제안을 하며 이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시에서 사는 분들은 알겠지만 주말농장이라도 가져서 아이들에게 자연과 흙과 가족에 대해 의미있는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죠. 그런데 바로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필요하면 집앞의 편의점에 잠깐 들르듯이 가서 바라볼 수 있는 3평짜리 텃밭이 있다면 어떨까요?

비전2동 도심텃밭- 작년에는 270구좌 올해는 334구좌로 3평짜리 텃밭을 1년동안 경작합니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 무단쓰레기 투기장이 되어가던 공지의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평택도시공사도, 평택시도 그리고 비전2동 주민들도 꽤나 만족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아이디어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이미 아파트 단지내에서 작은 텃밭을 운영하는 곳도 많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업무가 많은 공무원분들이 수많은 주민들의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야하는 이런 사업을 할 수 있을까요? 5만7천명의 주민들의 기본적인 행정수요를 단 21명의 동주민센터 공무원들에게 맡기는 것도 모자라 이런 사업까지 나서라고 할 수는 없는 거죠.

경기도 주민자치 제안 사업 공모 신청서

실제로 이 사업은 주민들의 호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전년 주민자치회도 이 텃밭 사업의 재원 안정을 위해 경기도 공모사업을 따내기도 했습니다. 1년에 5만원씩 270구좌 = 1350만원, 그리고 공모사업으로 약 1100만원 의 재원을 확보한 거죠. 그리고 그 텃밭중 주민들에게 분양하지 않고 주민자치회에서 직접 경작을 해서 얻은 수확물로 비전2동에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김장을 담아 제공하는 등의 부대사업도 함께 할 수 있었죠.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했으니 이제는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해야겠습니다. 농사를 지어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작은 텃밭 하나도 사람의 손이 많이 가고 지속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더군요. 특히나 주민자치위원은 모두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생활을 해야 하는 우리와 같은 주민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주말에 시간을 내서 이런 모든 과정들을 해야 합니다.



빈 공터가 문제라는 문제의식을 듣고,
그것을 텃밭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그 땅 주인과 용도가 평택도시공사라는 것을 확인하고,
평택도시공사와 교섭을 통해 텃밭으로 쓸수 있도록 사용 허가를 받고,
그 땅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 흙을 사오고,
농작물을 심을 수 있는 상태가 되게 하기 위해 수백포의 비료를 땅을 갈아 엎어가며 흠뻑 주고,
그 활동을 위해 농업기술센터에서 트랙터등의 장비를 빌려와서 갈고,
주변과의 경계를 위해 팬스를 치고,
3평 정도의 텃밭을 구분하기 위해 땅을 나누는 작업을 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해 현수막과 포스터를 만들고,
각 아파트와 주민게시판에 전단을 붙이고,
주민들의 참여 신청을 받기 위해 양식을 만들고,
신청 접수를 받고,
필요한 공용 농기구를 구매 배치하고,
텃밭 전담 공공근로 직원을 주민센터에 요청해서 뽑는 것까지는 시작에 불과 합니다.
농작물을 잘 키울 수 있도록 원하는 주민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텃밭 교육과정도 개설하고,
중간 중간에 생기는 주민들간의 분쟁도 조정해야 하죠.

270세대의 주민들이 저마다 자신들만의 방식을 고수하다보니 문제가 안 생길 수 없죠. 그런데 이 모든 일은 누가 따로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주민자치위원과 이에 관심을 가진 주민들이 함께 해야 하는 거죠. 작년에 30여명으로 시작했던 주민차치위원이 올해 시작할 때 17명까지 줄어들었던 이유는 제대로 참여를 하지 못하는 미안함도 한 몫을 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이다 보니 다양한 작물을 심으려고 했고, 그러다 보니 전담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정도가 되어버렸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작물의 종류도 제한하고,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아 추첨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을 정도라서 주민자치회의 경작지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344구좌로 주민들의 텃밭을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비가오던 어제 저희는 늦었지만 감자를 심었죠.

감자 심기

올 해에도 경기도 공모사업을 준비하고 감자, 고구마, 무 를 심어 수확해서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과 나눌겁니다.



'빈 공간이 있으니 텃밭을 만듭시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되게 하는 것이 남이 아니라 자신이라면 아주 작은 것부터 신경을 써야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이 모든 일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해주고, 행정적인 과정을 조언해주는 동주민센터의 주무관님들,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지해주는 동장님,
농사 경험이 있어 앞장서 주시는 몇몇 주민자치위원님들,
없는 시간을 쪼개서 참여해주는 주민들,
농업기술센터의 적극적인 도움 등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시간을 나누고 그것을 엮어 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참여하지 않고 말만 하는 주민들은 자신이 말했는데 진행이 안 되면 왜 별것도 아닌 것이 진행이 안 되냐며 불평과 불만만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직접 참여해서 일을 해보면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 사람들인지 새삼 혀를 내두르게 될 겁니다. 물론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주민자치회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주변의 보통의 주민들이죠.
언론의 이야기만 들으면 대한민국은 오늘 자고 일어나면 망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지만 이제는 선진국까지 된데에는 말보다는 참여를, 투덜거려도 일단 함께 일을 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다수 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게 됩니다.



주민자치회는 내 동네의 일을 내가 직접 참여해서 바꿀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조정하는 상황을 경험하게 하고, 우리가 원하는 일이 어떻게 행정적으로 처리되어 가는지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텃밭이 실패해도 좋고, 진행하던 사업이 어그러질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과정이 바로 내가 사는 이 나라는 정치인이 아닌 내가 주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게 해주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민자치회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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